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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젖먹이기(신한평 작, 자모육아)
    분야
    가족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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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
    자녀를 둔 여인을 일컫는 명칭.
    개설
    여인일지라도 자녀를 소생하지 않았거나, 입양시킨 자녀라도 슬하에 두지 않고는 어머니라는 칭호로 불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라는 칭호는 내포하는 의의가 크고 깊은 만큼 상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점에서 모든 사물의 시원을 상징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자녀를 위해 언제나 헌신하고 자애를 베푸는 점에서 인간관계에서의 너그럽고 인자함을 상징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오랜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어머니의 모습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엄하면서도 끝없이 자애롭다.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자녀들을 훌륭히 기르고 가르치는 책임 외에도 부과된 임무가 많았다. 우선 한 가정의 주부로서 살림을 책임지고, 남편을 받들고 가족관계를 원만히 이끄는 역할까지 도맡았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들은 무엇보다 자녀를 기르고 가르치는 의무를 소중히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희생을 오히려 보람으로 여겨왔다.
    먼저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면, 원시시대에는 모권(母權) 중심의 사회가 있었던 듯도 하다. 그러나 부족사회로 들어오면서 가부장적 제도로 인하여 부권(父權)이 확립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래로 오늘날까지 여성들은 남성우위의 사회제도 아래에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종속적 제도 아래에서도 묵묵히 막중한 자신들의 의무만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천직처럼 생각해왔다.
    조선시대의 유교가 자리를 굳히면서 여성의 지위는 삼종지의(三從之義)에 묶이게 되었다. 출가 전에는 아버지를, 출가 후에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아야 하였다. 그리하여 종속적 관계에 묶여 숨을 죽이며 살아야 하였던 것이 여성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도 어머니로서의 위치는 절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 스스로 권리주장을 한 적은 없으나, 어머니의 존재는 모든 제도를 초월하여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던 것이다. 오늘날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수많은 문집에 들어 있는 시문이나 전(傳), 그리고 제문·묘갈명 등을 보더라도 어머니를 그리는 정을 가득 담은 사연들이 그러한 사실을 대변하여주고 있다.
    어머니의 일생과 그 역할
    여성의 삶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그 첫 단계는 친가(親家) 시절로, 친가의 부모 슬하에서 신체적인 성장과 더불어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생활한다.
    이 시절에는 친가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출가해야 하는 다음 단계가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준비에 마음을 죄게 된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여성교육은 특정교육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가정단위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가문마다 나름대로의 개성 있는 생활목표를 세워놓고 그에 맞추어 교육을 시켰다.
    이 때 교과서 구실을 한 책들을 보면,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韓氏)가 이루어 낸 『내훈(內訓)』 7편이 있다. 1475년(성종 6)에 간행되었으며, 언행·효행·혼례·모의(母儀)·돈목(敦睦)·염검(廉儉) 등을 두루 다루고 있다.
    또한 선희궁 영빈이씨(宣禧宮映嬪李氏)는 한글로 『여범(女範)』 4권을 내어 출중한 여성들의 행적과 덕목을 다루었다. 그리고 일반인으로는 최세진(崔世珍)이 『여사서언해(女四書諺解)』를 펴냈다.
    그리하여 후한(後漢)조대가(曹大家)의 『여계(女誡)』, 당나라 송약소(宋若昭)의 『여논어(女論語)』, 명나라 인효문황후(仁孝文皇后)의 『내훈(內訓)』, 왕절부(王節婦)의 『여범(女範)』 등이 여성들을 위한 주요 교과서가 되었다.
    여성교육에 대해 영조 때의 이덕무(李德懋)는 “여성의 교육으로는 『논어』·『모시(毛詩)』·『소학』·『여사서』를 읽어 그 뜻을 알고, 백가성(百家姓)과 선세보계(先世譜系) 그리고 역대국호(歷代國號)와 성현(聖賢)의 명자(名字)나 알면 된다.”라고 하였다. 이 밖에도 가문마다 각기 출가할 딸들을 위하여 가사(歌辭)나 훈계서(訓戒書) 등을 지어 교육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송시열(宋時烈)의 『우암계녀서(尤菴戒女書)』와 해평윤씨(海平尹氏)의 『규범(閨範)』 등을 들 수 있다. 송시열의 『우암계녀서』의 내용을 보면 부모 섬기는 도리, 남편 섬기는 도리, 시부모 섬기는 도리, 형제 화목하는 도리, 자식 가르치는 도리 등 모두 20항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항목들을 살펴보면, 모두 부덕을 쌓는 수신적(修身的)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여성교육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었던가가 자명하여 진다.
    이덕무는 사소절(士小節)에서 여성이 시문을 지어서 밖으로 나돌게 하는 일은 잘못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부덕을 쌓는 일에만 치중하여 여성을 교육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기로 접어들면서 여성계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1894년 4월 팔도에 사민평등(四民平等)의 윤음(綸音)을 내려 남녀의 인권평등을 선포하였으며, 이어서 그 해 6월에는 「갑오개혁령」을 내려 국법으로 조혼을 금지시키고 과부의 재혼을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여성계에 온 가장 큰 변화의 한 가지는 개방적 교육의 실시였다. 종래 폐쇄된 속에서 가정단위로 이루어지던 여성교육이 밖으로 열린 사회에서 집단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1886년 미국인 스크랜턴부인이 이화학당(梨花學堂)을 세움으로써 근대적인 여성교육의 문을 연 이래로 여기저기에 여학교가 서게 되었으며, 1908년에는 마침내 「고등여학교령」이 선포됨으로써 여성교육은 획기적인 발전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이로부터 여성들은 근대화의 새로운 물결 속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여성교육이 오늘날과 같이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성들의 활동 범위도 자연히 가정에서 사회로 그 폭이 넓어지고, 생활의식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이 성년이 되면 출가하여 다른 가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야 한다는 생활양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만큼 오늘날도 혼인 전 여성들의 삶은, 자연히 다음 단계의 삶을 의식하게 되었으며 교육도 대부분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이 혼기에 이르러 출가하면 새로운 가정에서 두번째 단계의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출가하면 남편의 부모를 모시게 되고 그 가문의 법도에 따라서 생활하게 되며, 아이를 가지게 되면 비로소 어머니가 된다.
    한 여성이 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은 여성에게 주어진 임무를 어쩔 수 없이 떠맡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녀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숭고한 자기희생의 정신이 싹트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그만큼 여성은 어머니가 되는 과정에서 헌신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여성은 유아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기거와 동작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음식도 태아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절제하여 먹는다.
    이처럼 출산 전 태아에 대한 교육에 크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송시열은 그의 『계녀서』에서 “자식을 배었을 때 잡된 음식을 먹지 않으며, 기울어진 자리에 눕지도 않고 몸을 단정히 해 자식을 낳아야 자연 단정한 자식이 태어나느니라.”라고 하였다.
    태아가 열 달이 되어 출산하게 되면, 어머니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그것은 유아가 성장함에 따라서 독자적 개성을 가지게 되고, 그 형성된 인성은 가정과 사회에 바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머니는 자녀를 유아 때부터 건강하게 길러야 함은 물론, 한 사람의 인격을 갖출 수 있도록 계속 지켜보며 교육에 힘써야 한다.
    자녀교육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감안하여 과거에는 아버지와 분담하기도 하였던 것 같다. 송시열은 『계녀서』에서 “딸자식은 어머니가 가르치고 아들자식은 아버지가 가르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도 자녀교육에 있어서의 어머니의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들자식도 글을 배우기 전에는 어머니에게 있으니, 어렸을 때부터 속이지 말고, 너무 때리지 말고, 글을 배울 때에도 순서 없이 권하지 말고, 하루 세 번씩 권하여 읽히고, 잡된 장난을 못 하게 하고, 보는 데에서 드러눕지 말게 하고, 친구와 언약하였다고 하거든 시행하여 남과 실언하지 말게 하고, 잡된 사람과 사귀지 못하게 하고, 일가 제사에 참례하게 하고, 온갖 행실을 옛사람의 행적을 본받게 하고, 15세가 넘거든 아버지에게 전하여 잘 가르치게 하여 백사를 한결같이 가르치면 자연히 단정하고 어진 선비가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자녀가 성장하여 혼인할 나이가 되면 어머니는 그 자녀의 장래를 위하여 다양한 구실을 하게 된다. 자녀의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는 서로의 인격과 취미와 개성의 조화를 생각해야 하고, 자녀들의 장래와 가문에 미칠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잘 해결하기 위하여 자녀의 좋은 상담역할을 하여야 하고, 때로는 앞장서서 희생적인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자녀가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면 독립된 한 세대를 이루는 것이지만, 자녀가 한 세대로 독립이 되었다고 하여 어머니의 구실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새 세대의 건전한 출발을 위하여 끊임없이 보살피고 또한 그것을 의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그 손자들에게까지도 똑같은 모정으로 애정을 쏟는다.
    예로부터 한 사람의 자녀를 길러내는 데 있어 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임무는 이렇게 다양하고도 큰 것이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구실은 오늘날에도 근본적으로는 별로 달라진 바 없으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이 변화함에 따라 그 외부적 양상은 많이 바뀌었다.
    전통사회의 오랜 생활의식은 갑오경장 이후 변화를 거듭하여오다가 일제 치하를 벗어나 광복을 맞으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새로운 사조와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그에 따라서 산업사회를 맞았고 민주주의가 싹트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과정에서 여성들에게도 사회진출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여성들의 임무와 어머니의 구실도 조금씩 변화하게 되었다.
    과거의 여성들이 제한된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희생과 봉사의 일생을 보냈다면, 현대 여성들은 개방적 활동의 자유가 주어진 대신 이중의 임무를 감당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 여성들은 가정의 살림을 책임지는 임무 외에도 왕성한 의욕을 갖고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중의 임무를 진다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이지만, 여성들은 스스로 그 길을 택함으로써 보다 큰 삶의 보람을 찾고자 한다. 현대의 달라진 사회여건 속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은 지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의 어머니들이 다산의 고통을 겪고, 여러 자녀들을 키우는 데 노력하였다면, 현대의 어머니들은 산아제한 속에 적은 수의 자녀를 잘 가르쳐야 하는 임무를 안고 있다.
    적은 수의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의 마음은 자칫하면 불안에 싸이게 된다. 게다가 현대의 어머니는 자녀의 교육과정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더한층 책임이 무거워지고 있다. 치열한 사회경쟁에서 늠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어머니들은 유아교육으로부터 최고학부에 이르기까지 힘을 다하여 정성을 쏟는다.
    훌륭하였던 어머니
    우리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훌륭한 역사적 인물들 뒤에는 반드시 어머니의 큰 힘이 뒷받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던 신라 김유신(金庾信)의 뒤에는 남달리 자녀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던 어머니 만명 부인(萬明夫人)이 있었고, 고려말 절개를 지켜 만인의 귀감이 된 정몽주(鄭夢周)의 뒤에는 그의 어머니 이씨 부인의 가르침이 있었다. 이처럼 훌륭하였던 어머니들은 어느 시대에도 있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큰 학자 이이(李珥)가 있기까지에는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과 외할머니 이씨 부인의 가르침이 있었던 것이다. 이이의 외할머니는 병약하였던 남편 신씨를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던 어진 부인이었고, 딸 사임당을 출중하게 키워낸 어머니였다. 그리고 이이를 학자로 대성시키는 데 있어서도 큰 구실을 하였다.
    이이는 주로 외가 쪽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외할머니의 훈도를 받게 되었다. 게다가 이씨 부인은 90세까지 장수하여 딸 사임당보다 18년이나 오래 살았기 때문에, 사임당 사후에는 이이의 어머니 구실까지 해냈던 것이다.
    사임당이 별세할 때 이이는 나이가 16세인 소년이었다. 마음의 기둥인 어머니를 잃은 그에게 외할머니는 애정을 쏟아 그 빈 자리를 채워주고자 헌신하였다.
    이이는 뒷날 그러한 외할머니의 사랑을 못잊어 여러 차례 관직을 사양하고 노후의 외할머니 봉양을 자원하였던 것이다. 이이를 길러낸 사임당은 그림과 글씨 그리고 수예와 시문(詩文), 거기다가 높은 교양과 부덕을 쌓은 사람이었다.
    아내로서는 남편인 이원수(李元秀)를 잘 받들어서 그로 하여금 학문에 정진하게 함으로써 관직으로 나아갈 길을 열게 하였고, 항상 현명한 조언으로 남편의 사회생활을 도왔다.
    사임당은 또한 어머니로서도 4남 3녀의 일곱 자녀를 훌륭하게 가르쳐 이이와 같은 큰 학자와 매창(梅窓)같은 현숙한 예술가, 그리고 이우(李瑀) 같은 인물을 길러냈던 것이다. 이이가 이루어놓은 학문적 경지의 밑바탕에는 7세 때부터 『논어』·『맹자』 등을 가르쳐준 어머니 사임당의 교육의 힘이 깊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딸 매창의 부덕과 학문·시(詩)·서(書)·화(畫)·수예 등에 능하였던 예술적 경지나, 아들 이우의 학문과 시·서·화의 높은 수준은 모두 어머니 사임당의 영향이 결정적인 힘이 되었던 것이다.
    사임당은 딸로서도 어머니 이씨 부인에게 효성을 다하였고, 아내와 어머니로서도 임무를 훌륭하게 해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독자적 세계도 훌륭히 이루어냈다.
    학문과 시·서·화·수예 등에서 이룬 그의 대가적 경지는 오늘에 전하는 그의 예술적 작품에서 계속 그 가치를 발하고 있다.
    우리의 훌륭하였던 어머니들의 행적은 그 이야기의 끝을 찾기 어렵다. 그 중 김만기(金萬基)와 김만중(金萬重) 두 형제를 혼자 힘으로 길러낸 윤씨 부인의 경우는, 손녀(김만기의 딸)를 또한 잘 가르쳐 왕후(肅宗妃 仁敬王后)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윤씨 부인은 전범적인 삶을 산 어진 어머니로서 문중과 인근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분이다.
    윤씨 부인은 영의정을 지낸 윤두수(尹斗壽)의 고손으로 명문가에서 출생하여 높은 교양을 쌓았고, 예의범절이 규범에서 벗어남이 없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할머니 정혜옹주(貞惠翁主)가 슬하에 두고 길렀으며, 『소학』을 외워 가르치면 문득 깨달아 막힘이 없었다.
    성장하여 김익겸(金益兼)에게 출가하였는데, 남편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화약을 물고 김상용(金尙容)과 함께 절사(節死)하였다.
    이로써 윤씨 부인은 남편과 사별하게 되었는데, 그때 슬하에는 5세가 된 맏아들 만기가 있었고, 둘째아들 만중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뜻하지 않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하여, 윤씨 부인은 혼자서 집안살림을 해나가며 두 형제를 키워야 하였다.
    그때의 생활상에 대하여 김만중은 「정경부인윤씨행장(貞敬夫人尹氏行狀)」에서 “집안이 더 곤(困)하여 몸소 방적(紡績)하여 조석에 공급하되 항상 태연하여 근심하는 얼굴이 없고, 또한 불초(不肖)형제로 알게 아니하시니, 대개 일찍이 집안 세무(細務)에 골몰하여 서책공부에 방해로울까 염려하심이라.”라고 하였다.
    윤씨 부인이 빈곤한 살림을 힘겹게 해나가면서도, 성장기에 있던 자녀들을 출중하게 가르치고자 하는 일념으로, 어떻게 정성을 쏟으며 인고의 날들을 보냈는지가 윗 글에서 선연하게 드러난다. 윤씨 부인은 두 자녀의 어린 시절 교육을 스스로 맡았다.
    이 일에 대하여 「정경부인윤씨행장」에서는 “형제 어려서 밧스승이 없이 『소학』·『사략』·당시(唐詩)의 유(類)를 대부인이 가르치시니, 자애(慈愛) 비록 과하시나, 재조와 학식이 남보다 한층 더하여야 겨우 남의 유 들리라 하시고, 사람이 행실이 없는 자를 꾸짖으며 말하기를 ‘반드시 과부의 자식이라 하나니, 너희는 마땅히 각골(刻骨)하라.’ 하시며, 불초형제 허물 있으면 반드시 손수 매를 잡고 울며 이르시되, ‘너희 부친이 너희 형제를 내게 의탁하였거늘 너희들이 이렇듯하니 내 지하에 가 무슨 낯이 있으리요. 학문을 아니 하고 삶이 죽음만 같지 못하다.’ 하시니.”라고 하였다.
    이렇게 윤씨 부인은 몸소 엄한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대하여는 온갖 헌신을 다 하였다. 또 “난(亂)이 갓 지나 서책을 얻기 어려운지라 『맹자』·『중용』같은 책을 대부인이 곡식으로 바꾸고 『좌전(左傳)』을 파는 자가 있으니, 선형(先兄)이 뜻에 심히 사랑하오되 권수가 많음으로 값을 감히 묻지 못하니 대부인이 베틀 가운데 명주를 내어 그 값을 갚으니……, 또 사람을 인하여 옥당(玉堂)에 사서(四書)와 『시전언해(詩傳諺解)』를 빌려다가 손수 베끼시니 자획이 정제하여 구슬을 꿴듯하고 한 구도 구차함이 없더라.”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윤씨 부인의 자녀를 위한 이러한 정성은, 김만기를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과 보사공신(保社功臣)에 이르게 하였으며, 김만중을 대제학과 판서의 관직에 오르게 하였다.
    한편, 김만중은 어머님을 기쁘게 할 목적으로 「구운몽(九雲夢)」을 지었으며, 이 작품들은 우리 문학사에서 길이 빛나고 있다.
    문학 작품에 나타난 어머니
    끝없는 자애와 헌신으로 자녀를 위하여 일생을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여러 문학 작품들에 나타나 있다.
    그 나타난 양상을 보면, 하나는 자녀를 위하여 다 하지 못한 모정을 드러낸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끝없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사모의 정을 읊은 작품들이 있다. 어느 작품이나 모두 순수하고 고귀한 심중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읽는 이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준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이룬 작품들로는 특히 가사작품들이 많다. 수없이 많이 이루어진 계녀가(誡女歌) 가운데의 「훈시가」·「행실교훈가」·「규방경훈가」 등은 자녀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심중을 읊은 내용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자녀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심중을 나타낸 작품들은 소설·수필·시 등 작품 영역이 매우 넓다.
    고전작품으로는 고려가요로 전하는 「사모곡(思母曲)」을 들 수 있다. “호매도 날히언 마라ᄂᆞᆫ 낟가티 들리도 업스니이다/아바님도 어이어신 마라난 어마님 가티 괴시리 업세라.” 또한, 시조로는 박인로(朴仁老)의 「조홍시가(早紅枾歌)」를 들 수 있다. “반중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다/유자 아니라도 품엄즉 하다마는/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그를 설워하나이다.”
    이 밖에도 어머니를 그리는 글들은 어느 문인의 문집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머니 살아 생전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다가 돌아가신 뒤에 못다 한 사모의 정을 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의 작품들은 현대문학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소설로는 강경애(姜敬愛)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박완서(朴婉緖)의 「엄마의 말뚝」(1981), 송기숙(宋基淑)의 「어머니의 깃발」, 김학섭(金學燮)의 「어머니」 등을 들 수 있다.
    시로는 어머니를 제목으로 한 시집만도 박목월(朴木月)의 『어머니』와 조병화(趙炳華)의 『어머니』·『어머님 방의 등불을 바라보며』 등이 있다. 어머니를 찬미하는 시들을 모은 시모음집으로 유정(柳呈)이 편집한 『어머니의 찬가』를 들 수 있다.
    ‘어머니’라고 부르기만 하여도 벌써 우리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포근함과 지고의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분위기를 담은 시들로는 이장희(李章熙)의 「청천(靑天)의 유방(乳房)」이나 신석정(辛夕汀)의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가 그러한 예이다.
    “어머니 어머니 하고/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푸른 하늘에/따스한 봄이 흐르고/또 흰 볕을 놓으며/불룩한 유방이 달려 있어/이슬 맺힌 포도송이보다/더 아름다워라.(청천의 유방)”, “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들장미 붉어/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또한, 수필에도 어머니를 못내 그리워하는 내용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홍종인의 「어머님, 내 마음의 기둥」, 박화성(朴花城)의 「나의 어머니」, 김동명(金東鳴)의 「어머니」, 심훈(沈熏)의 옥중편지인 「어머님께」 등을 들 수 있으며, 어머니에 관한 수필들을 모아서 피천득(皮千得)이 편집한 『어머니』도 있다.
    이러한 문학작품들을 통해서 보면, 어머니의 끝없는 자애로움이 자녀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그 자체로 삶의 자양분이자 기둥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의 고향으로서의 어머니
    어머니의 가슴은 한없이 부드럽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에 미친 어머니의 힘은 강하였고, 역사의 주역들을 키우고 그들을 있게 한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희생자인 동시에 창조자이기도 하다.
    가정과 자녀를 위해서는 즐겁게 자기희생을 하였고, 자녀를 훌륭히 키우고자 불사른 정렬은 태양처럼 뜨거웠다. 우리들의 훌륭하였던 어머니들의 삶을 돌아보면, 받는 것보다는 베푸는 것을 천명처럼 생각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끝없는 자기희생 속에서 가정과 자녀를 위해 묵묵히 몸 바치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성직자의 모습과 같다. 그러기에 누구나의 가슴속에 담긴 어머니의 모습은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누구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감미롭고 포근하며, 따뜻하고 든든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힘들고 어렵고 절망적일 때 어머니를 부르며 어머니의 가슴에 안기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가장 큰 환희와 보람의 절정에 섰을 때에도 어머니를 부르며 뜨거운 감동을 나누어 드리고자 한다.
    참고문헌
    집필자
    집필 (1995년)
    박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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